캐롤라인 노마 (지은이),유혜담 (옮긴이)열다북스2020-07-30원제 : The Japanese Comfort Women and Sexual Slavery during the China and Pacific Wars

당신이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
‘위안부’라는 단어는 한국이라는 나라 안에서 특수한 위치에 놓여있다. 보통 이 단어를 보거나 듣는 것과 동시에 집단적으로 일본에 대한 분노와 적대감을 형성하고, 소녀상과 ‘위안부 할머니’라는 단어를 연상하게 될 것이다. 또 “우리의 영원한 숙제”라는 매우 익숙한 표현이 자연스럽게 떠오를 것이며, 더 나아가 심금을 울리는 단어이자 식민지배라는 역사적 사건을 함축하고 있는 매우 감정적인 단어로서의 힘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한편으로 우리가 일본군 ‘위안부’의 역사를 배우고 인식해 온 방식을 의미한다.
곧, 우리가 지금까지 해 온 ‘위안부’ 정의 운동이란 일본의 군국주의, 식민주의 역사에 대항하는 민족주의적인 운동이라는 제1가치를 부여해둔 운동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이 관점 아래에서는 군 성노예제의 피해자와 그들의 역사적인 위치, 가해 사실에 대한 진정한 사죄의 방식은 명확하게 설명되지 않는다.
한편 젊은 페미니스트들을 포함한 한국의 반성착취 운동가들은 일제 강점기 시대 동네 남자 어른의 ‘위안소’로의 인신매매에서부터 미군 기지촌의 성착취, 현재의 성착취 산업과 과잉 성적 대상화된 사회를 일직선 상에 둔 뒤 ‘국가가 포주다’라는 표현을 통해 해당 역사를 피해 주체였던 여성을 중심으로 민족주의라는 장막을 걷어 내는 것에 일부 성취를 얻어 냈다. 적어도 ‘성매매’라는 단어는 성착취라는 단어로 대체되어야 한다는 이해의 확산과 과거부터 존재했던 성착취 산업 구조의 원인에는 국가의 부추김과 방관 큰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 인식의 확산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2020년 봄, 한국에서 대표적으로 ‘위안부’ 정의 운동을 이끌고 생존 피해자들을 지원했던 민간 단체 ‘정의연’(정의기억연대) 기부금 횡령 등 내부에서 비리가 지속되어 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일본군 ‘위안소’ 제도의 생존자이자 피해자 할머니들의 비탄과 많은 한국인의 분노 아래 ‘위안부’ 정의 운동의 방향을 재정의 해야 한다는 논의가 나왔고, 이에 한국의 젊은 페미니스트들은 작은 혼동에 빠졌다. 탈코르셋 운동, 4B운동, 반-성착취 운동에 몰두하고 있던 그들 또한 ‘위안부 할머니’들을 “어떻게 지원하는 것이 피해자와 피해 사실의 역사를 위하는 것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을 하게 되는 첫 순간이 되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이 시기가 한국의 젊은 레디컬 페미니스트들에게 ‘위안소’제도와 ‘위안부’ 생존자가 중심 주제로 처음 등장하게 된 계기였다. 이 고민이 한국 내부의 팽배한 민족주의적 관점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전시 성착취 제도를 전체적인 성착취 시스템의 역사 속에서 찾아내는 것이 필요했다.
이 책의 내용
이 지점에서 캐롤라인 노마는 책 <‘위안부’는 여자다 (The Japanese Comfort Women and Sexual Slavery during the China and Pacific Wars)>을 통해 사료(史料)와 선행 연구자, 운동가들의 말을 바탕으로 독자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지고 이에 대한 그의 주장을 펼쳐 나간다.
전쟁 중 여자에게 자행되는 무수한 성폭력은 과연 전부 전쟁 탓일까?
‘위안부’ 정의 운동에서 성착취 선경험 피해자와 일본인 여성 피해자에 대한 연구 부재의 이유는 무엇인가?
“총체적인 성착취 시스템” 내에서 ‘위안부’ 제도가 어떤 “역사적 위치”를 지니고 있는가?
노마가 전하려고 하는 내용은 명확하다. ‘위안소’ 제도의 근본원인은 민간 성착취(상업적 성착취)에 내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시 성착취와 민간 성착취의 연결 고리를 설명하기 위해 이 책은 5개의 장에 걸쳐 자세하게 자료를 제시한다. 특히 전쟁 전 일본 사회의 ‘공창’제도, 민간 성착취 생존자(게이샤)의 증언, 민간 성착취 업소의 운영 방식과 군 부대 내 성착취 집결지(‘위안소’)의 운영 방식 유사성, 전쟁 전, 후 일본 남성들의 성착취 구매율 비교 등을 통해 상관관계를 밝혀 나간다.
이 책의 미래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
한국의 독자라면 사료를 통해 반복적으로 전하는 노마와 반성착취 운동가들의 주장은 어려움 없이 납득하기 쉬울 것이라 예상한다. 우리는 이미 성 노동, 성매매, 포르노그래피, 리벤지 포르노 등 과 같이 단어 자체와 단어 구조에서 가해 사실이 은폐되는 단어들을 ‘성착취’, ‘디지털 성폭력’ 등으로 바꿔 사용하는 운동에 어느 정도 성공을 했고(단어 선택은 의식의 형태를 반영한다) 반성착취 운동 또한 성착취 생존자들과 함께 20년이 넘도록 진행해 오면서 성착취 산업의 합법화를 막는 것에도 성공했기 때문이다.
이 글을 통해 <’위안부’는 여자다>의 핵심을 파악했겠지만 그럼에도 이 책 전체를 읽어야 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노마 그리고 번역가 유혜담이 빠르지 않은 호흡으로 펼쳐 놓은 동아시아, 특히 일본 내의 성착취 시스템의 선형을 발견하는 과정과 그 속에서 ‘위안소’ 제도를 발견하는 과정,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통해 얻게 될 지금까지의 의문에 대한 답변과 새롭게 생겨날 고민들이 결국 범지구적으로 존재하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성착취 시스템의 피해자들을 구하고, 거대한 물결의 반성착취 운동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함께 읽으면 좋을 책

박혜정의 <성노동, 성매매가 아니라 성착취, 열다북스, 2020>를 먼저 읽어보거나 함께 읽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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